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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소개


개암사

천년고찰 "개암사"

  • 문  의  처 : 063-583-3871
  • 주       소 :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714
  • 이용시간 : 00시 ~ 00시
  • 휴  무  일 : 무휴
  • 입  장  료 : 무료
  • 홈페이지 : http://www.gaeamsa.org/

개암사 소개

17세기의 대표적인 불전 개암사는 백제말 통일신라 초기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유서 깊은 절이나 현재는 1636년(인조14년)에 중건(重建)된 대웅전을 중심으로 응진전, 영각, 응향각, 요사 등을 갖추고 있는 소규모 사찰이다.

대웅보전은 장대석 기단 위에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세운 건물로 평면이 정면 3칸(11.85m), 측면 3칸(7.8m)이며 내부에는 2개의 고주(高柱)를 측면 기둥 열보다 훨씬 뒤로 물려 세워 예불(禮佛)을 위한 면적을 넓게 확보하고 있다. 건물 앞뒷면에는 모두 분합문을 설치하고, 좌우 측면에는 맨 앞쪽 칸에만 외짝문을 달아 출입 하도록 하였다.

뛰어난 조각술로 이름 높은 건물 내부에는 가운데에 불단(佛壇), 좌우 칸에 신중단(神衆壇)과 영단(靈壇)을 설치하였으며 불단 위에 3존 불을 모시고 후불벽에는 후불탱화를 걸어 놓았으며 그 위는 아자형(亞字形) 천개로 장엄하였다. 천정은 층급형 우물천정으로 각 층급벽에는 나한도를 그리고, 정면 가운데칸 공간포 및 귀포의 윗부분과 충량 머리에는 모두 9마리의 용을 배치하여 내부공간을 극적으로 장엄하고 있다. 17세기의 대표적인 불전(佛殿)이며, 뛰어난 조각술로 이름 높은 건물이다.


변산8경에 속하는 개암고적

제8경 개암고적

제8경 개암고적(開巖古跡)

개암사는 변산의 상징인 울금바위 아래에 자리한 천년고찰로 깊은 역사와 찬란했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그 옛날 백제 유민들이 백제의 부흥운동을 전개한 본거지이기도 하며, 울금바위의 위용과 주류성의 자취는 그윽한 역사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관련 사진

대웅전 천정 뛰어난 조각술 및 각 층급벽의 나한도

뛰어난 조각술을 보여주는 대웅전 천정 및 각 층급벽의 나한도

개암사 템플스테이

개암사 템플스테이

* 이미지 및 자료 출처 : 부안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개암사 홈페이지

내소사

천년고찰 "내소사"

  • 문  의  처 : 063-583-7281
  • 주       소 :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
  • 이용시간 : 00시 ~ 00시
  • 휴  무  일 : 무휴
  • 입  장  료 : 성인 3,000원
  • 홈페이지 : http://www.naesosa.org/

내소사 소개

혜구 스님이 창건한 소래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절 일원이 전라북도 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되어 있다.

633년(무왕34) 혜구(惠丘)가 창건하여 소래사라고 하였다. 그 뒤 1633년(인조11)에 청민(靑旻)이 대웅보전을 지어 중건하였고, 1604년(인조18) 청영(淸映)이 설선당과 요사를 지었다. 1902년 관해(觀海)가 수축한 뒤 1983년 일주문을 세우고 198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으며, 1986년 천왕문을 짓고 설선당과 요사를 보수하였다. 1987년 봉래루를 해체 복원하였으며 1988년 요사인 진화사(眞華舍)를 건립하였다. 1995년 수각(水閣)과 종각을 짓고 범종을 조성하였다.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것은 중국의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한 뒤, 이 절을 찾아와서 군중재(軍中財)를 시주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고쳐 불렀다고 전하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현존하는 당우 및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비롯하여 보물 제277호인 고려동종(高麗銅鐘), 보물 제278호인 법화경절본사경(法華經折本寫經), 보물 제1268호로 지정된 괘불 등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요사채, 설선당(說禪堂)·보종각(寶鐘閣)·봉래루(蓬萊樓),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등이 있다.

의장과 기법이 매우 독창적인 조선 중기의 대표작 대웅보전은 1623년(인조1)에 완공되었는데 그 의장(意匠)과 기법이 매우 독창적인 조선 중기의 대표작이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었다고 하며, 법당 내부의 벽면에 그려진 관세음보살상 등의 그림도 일품이다. 또한, 고려동종은 1222년(고종9) 변산 청림사(靑林寺)에서 만든 종인데, 1850년 땅속에서 발굴된 뒤 이 절로 옮겨졌다. 부속암자로는 입구의 지장암과 절 후방 1.5㎞ 지점에 청련암이 있다.


관련 사진

내소사 1

내소사 대웅보전 (大雄寶殿)


내소사 2

내소사 고려동종 (高麗銅鐘)과 3층석탑


내소사 3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 (說禪堂 寮舍)


내소사 4

내소사 영산회괘불탱화 (靈山會掛佛幀畵)


* 이미지 및 자료 출처 : 부안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내소사 홈페이지

이매창 시 : 이화우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이매창 묘

이매창 묘

  • 문  의  처 : 063-580-4224
  • 주       소 : 전북 부안군 부안읍 매창1길 4

교과서에 실려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본 시조.
이 글을 지은 주인공은 바로 조선시대 기생이었던 매창(梅窓, 1573~1610)이다.

조선후기의 학자 홍만종(洪萬宗)은 시를 비평한 그의 저술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근래에 송도의 진랑(眞娘: 황진이)과 부안의 계생(桂生: 매창)은 그 사조(詞藻)가 문사들과 비교하여 서로 견줄 만하니 참으로 기이하다”고 하며, 매창을 황진이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명기(名妓)로 평가하였다. 그녀는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에 큰 명성을 얻으면서, 천민 출신의 시인 유희경(劉希慶)의 정인이며,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許筠), 인조반정의 공신 이귀(李貴) 등과 같은 많은 문인ㆍ관료들과 교유했다.


* 자료 출처 : 인물한국사


조선시대 여류시인 '이매창' 소개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에 있는 이매창의 묘로 전라북도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었다.
이매창은 조선 중기의 기생이자 여류시인이다. 묘는 1983년 8월 24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매년 음력 4월 5일 부안의 율객(律客)모임인 부풍율회(扶風律會)에서 매창제(梅窓祭)를 지내고 있다.

매창(梅窓)은 조선 선조 6년(1573) 부안현리인 이양종의 서녀로 태어났다. 이름은 계화, 계생, 향금(이라고 하였는데 이중 계화, 계생이라는 이름은 그녀가 계유년에 태어났기 때문이라 한다. 자는 천향(天香), 호(號)는 매창(梅窓)이라 하였다. 광해군 2년(1610)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와 가무에 뛰어나 개성의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 명기의 쌍벽을 이루었다.

매창이 남긴 시(詩)중 현재 전하는 것은 61수이다. 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웠으며 시와 글씨가 뛰어나 조선 여류 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또[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나 유희경 등의 시인과도 가까웠던 사이로 전해진다. 생애 많은 시를 남겼으나 거의 없어지고 광해군 2년(1610) 여름 세상을 떠나자 거문고와 함께 묻혔으며 그녀의 대표적인 시 이화우(梨花雨)는[가곡원류]시조집에 실려 있다.

생애 많은 시를 남겼으나 거의 없어지고, 1668년에 부안의 아전들이 외워 전하던 58편을 얻어 개암사에서 목판으로[ 매창집 ]을 만들었다. 부안읍 봉덕리에 위치한 이 묘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앞에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토광원분묘형이다. 묘 앞에는 높이 100㎝, 윗넓이 39㎝, 아래넓이 35㎝의 ‘명원이매창지묘(名媛李梅窓之墓)’라고 쓴 묘비가 서 있다.


관련 사진

이매창 묘 1

이매창 묘 2

* 이미지 및 자료 출처 : 부안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 석 정 -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野薔薇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나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나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까마귀 높이 날어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때
나와함께 고 새빨간 능금林檎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임께서 부르시면 
																	 - 신 석 정 -																							  

가을 날 노랗게 물 드린 은행 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湖水)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 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구비구비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란 하늘에 백 로(白鷺)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신석정생가

신석정(辛夕汀) 생가

  • 문  의  처 :063-580-4387
  • 주       소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석정로 63
  • 이용시간 : 00시 ~ 00시
  • 휴  무  일 : 무휴
  • 입  장  료 : 무료
  • 홈페이지 : 석정문학관 www.shinseokjeong.com

한국시단의 巨星 '신석정' 소개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있는 시인 신석정의 옛집. 전라북도 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었다.

신석정(夕汀, 본명 錫正)이 시인으로서 꿈과 청춘을 키우며 첫시집 [촛불]과 제 2시집[슬픈목가]를 탄생시킨 곳이다.
석정이 이 집을 마련한 것은 1935년이다. 부안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향리에서 문학의 꿈을 키우며 지내던 그는 1930년 상경하여 불교 전문 강원에서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 스님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31년에는 박용철(朴龍喆), 김영랑(金永郞)등과 어울리며 시문학(時文學)의 동인이 되어 순수문학의 기치를 들며, 1930년대 최초의 모더니스트라 불릴 만큼 서구의 낭만시와 한국적인 면을 가미한 문단의 거인으로 등장하였다. 그는 시문학 동인이 되어 본격적인 시작(詩作)활동을 하였으나 어머님의 부름을 받고 귀향하였다. 그 후 이 집을 마련하여 분가하였으며 스스로 청구원(靑丘園)이라 이름지었다.

석정은 조국을 빼앗겼던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질긴 시혼으로 민족혼의 배양토 구실을 했다. 청구원은 이름대로 앞뜰에는 큰 은행나무를 위시하여 온갖 나무들이 큰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집 서편에는 우거진 시누대밭이 있었다. 집은 남부지방의 일반적인 농가의 모습처럼 ‘一’형 초가이다. 부엌과 안방, 웃방, 건넌방 순으로 실이 구성되어 있고, 방 앞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1952년 전주시 노송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신석정이 이 집에서 살았다.


관련 사진

신석정생가 1

신석정 시인


신석정생가 2


신석정생가 3


신석정생가 4


* 자료 출처 : 부안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신석정문학관 홈페이지

부안향교

부안향교

  • 문  의  처 : 063-580-4351
  • 주       소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당간지주1길 15
  • 이용시간 : 00시 ~ 00시
  • 휴  무  일 : 무휴
  • 입  장  료 : 무료

부안향교 소개

성현들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들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있는 향교이다.

1414년(태종 14)에 창건되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0년(선조 33)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며, 1607년에 만화루(萬化樓)를 신축하고 1848년에 양사재(養士齋) 신축 등 대대적인 확장을 하였다. 1894년에 현감 조연명(趙然明)이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신축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 각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명륜당과 만화루, 양사재, 동재, 서재 등과 홍살문·하마비(下馬碑)가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9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관련 사진

부안향교 1


부안향교 2